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문단 편집) === 소련 붕괴 후 완전 복원 === 1990년 아직 소련이 해체되지 않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로 점점 기지개를 펴던 [[러시아 정교회]]는 소련 정부로부터 성당 복원의 허가를 받고 재건을 기획했다. 소련 해체 이후인 1992년 러시아 정교회는 복원 기금을 신도들로부터 모금했고, 100만명의 신앙심 깊은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해서 건축기금을 만들었다. 1995년 모스크바 탄생 850주년을 기념해 삽을 뜨고 2000년 8월 19일 변모축일에 완전히 복원된 성당이 문을 열었다. 결국 건물 자체는 현대에 다시 지었지만, 무지하게 거대한 규모나 황금빛 가득한 화려한 장식 덕분에 러시아인들에게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나 명소가 됐다. 대성당 외부는 얼마든지 사진 촬영이 가능하나, 내부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내부 모습을 보려면 직접 방문하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홍보용 또는 학술용 사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입구에는 대성당의 연혁과 소련시절의 박해사를 기록한 문구가 벽 전체를 메웠음이 특이한 점이다. 대성당 자체도 진귀한 볼거리이지만, 그 주변에도 눈여겨 볼 만한 것들이 많다. 대성당 옆에는 [[알렉산드르 2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알렉산드르 2세는 부황 니콜라이 1세 때 발발한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가 처참히 패배한 원인이 뒤떨어진 사회체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개혁을 단행하기로 결심했다. 알렉산드르 2세 시대의 절정은 바로 그 유명한 1861년의 농노 해방령(Крестьянская реформа)이다. 비록 그 실효성은 미미했다고 전해지나, 사회 근본체계를 바꿔보려고 했던 알렉산드르 2세의 노력 자체는 되새겨볼 만하다.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는 부황의 기념비를 세우라 명령했는데, [[니콜라이 2세]] 때 완성되었다. 당시에는 좌우로 복도가 딸린, 상당한 규모의 기념비였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이후 조각상이 파괴되었으며 몇 년 후 복도까지 완전히 파괴됐다. 2006년에야 당시 모스크바 시장 [[유리 루즈코프]]가 다시 세웠지만, 복도까지는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